주말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가거나 연인과 근사한 레스토랑에 갔을 때 메뉴판을 보며 어떤 음식을 고를지 고민하셨던 경험이 다들 있으실 겁니다.
메뉴판 맨 위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예상보다 훨씬 비싼 금액의 스테이크나 코스 요리가 적혀 있으면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려 그보다 조금 더 저렴한 중간 가격대의 음식을 고르며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안도하곤 하는데요.
사실 우리가 메뉴판을 보며 내리는 이 결정 뒤에는 소비자의 기준점을 흔들어놓는 교묘한 마케팅 심리학인 앵커링 효과가 숨어 있습니다.
저 역시 얼마 전에 동네에 새로 생긴 파스타 전문점에 갔다가 이 심리적 함정에 완벽하게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메뉴판 맨 위에 7만 원짜리 스페셜 티본스테이크가 딱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한 끼 식사로 선뜻 지불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자연스럽게 아래를 보니 2만 원대 파스타와 3만 원대 리조또가 보였습니다.
순간 7만 원에 비하면 2, 3만 원은 생각보다 엄청 저렴하고 가성비가 좋다는 느낌이 들어서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평소 먹던 점심값에 비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싸다고 느꼈는지 제 자신이 참 신기했습니다.
닻을 내리듯 뇌에 각인되는 첫 번째 숫자
앵커링 효과는 배가 바다에 닻을 내리면 그 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처음에 마주한 정보나 숫자가 기준점이 되어 이후의 판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리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의 뇌는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독립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항상 주변의 다른 정보와 비교를 하려는 습관이 있지요.
레스토랑 메뉴판의 가장 비싼 요리는 사실 판매자가 실제로 많이 팔고 싶어서 올려둔 메뉴라기보다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높은 가격의 기준점이라는 닻을 내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배치한 미끼인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 7만 원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보고 나면 그 다음에 보는 3만 원이라는 숫자는 상대적으로 아주 작고 만만하게 보이게 되는 원리입니다.
비교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는 타협 효과
이러한 앵커링 효과가 구매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소비자의 타협 효과라는 심리도 함께 작동합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선택할 때 가장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가장 비싼 것을 사기에는 지갑 사정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고르자니 왠지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일행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무난하고 안전해 보이는 중간 가격대의 제품을 선택하면서 스스로 아주 현명하고 이성적인 소비를 했다고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이러한 심리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팔고 싶은 주력 상품의 가격을 중간에 배치하고, 그 위아래로 최고가 메뉴와 최저가 메뉴를 장치처럼 깔아두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중간 메뉴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유도하는 동선을 짜놓습니다.
현명한 소비를 위해 기준점을 리셋하는 습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앵커링 효과는 비단 레스토랑 메뉴판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전제품을 사러 갔을 때 원래 가격은 200만 원인데 이번 주만 특별히 120만 원에 드립니다 라고 붙어 있는 할인 가격표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흔히 보는 권장소비자가격 대비 몇 퍼센트 세일 같은 문구도 모두 우리의 뇌에 높은 기준점을 먼저 심어주기 위한 전략입니다.
이러한 가격 착시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합리적인 지출을 하기 위해서는 마케터가 제시한 첫 번째 숫자를 머릿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원래 얼마였는지, 주변의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저렴한지에 집중하기보다 오롯이 이 제품과 음식을 내 돈을 주고 살 만한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가에만 집중해 보는 것입니다.
이 사소한 시선의 변화만으로도 충동적으로 지갑이 열리는 것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메뉴판을 보며 은연중에 중간 가격을 고르고 안도했던 것은 결코 자제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비교 본능과 인지 구조를 완벽하게 파고든 세련된 심리 마케팅에 뇌가 자연스럽게 반응한 결과였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식사 자리를 가지신다면 메뉴판의 구성과 가격 배열을 가만히 관찰해보세요.
레스토랑이 나에게 어떤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는지 그 비밀이 보이기 시작하면 일상의 선택이 훨씬 더 흥미롭고 명확해질 것입니다.
저는 평소에 무심코 내리던 결정들을 이렇게 심리학으로 풀어보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지는 것 같아서 참 유익하더라고요.
여러분도 식당이나 매장에서 가격표를 보다가 앵커링 효과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결제했던 재밌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소소한 경험담이 있다면 댓글로 편하게 이야기 나누어주세요.
매일 마주하는 생활 속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마케팅 심리 이야기를 계속해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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